2000년에 신동아 잡지에 났던 제 의국시절 이야기네요. ㅎㅎ

2000년에 신동아 잡지에 났던 제 의국시절 이야기네요. ㅎㅎ

전체글글쓴이: cistern » (목) 02 09, 2012 2:23 pm

[밀착르포|전공의·수련의 24시]

7월10일 오전6시3분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암센터 5층 신경외과 의국. 10여평되는 방에는 잘 정돈되지 않은 책상 5개가 놓여 있었고 출입구 오른편 구석에는 허름한 철제 2층 침대 두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방 가운데에는 그 전 날 먹다 만 것으로 보이는 햄버거가 뒹굴고 있고, 침대위에는 잠옷 대용으로 사용하고 벗어 던진 녹색 수술복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책상 위에는 음식을 자주 시켜먹기 때문인지 중국집 도시락집 등에서 보낸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전공의 의국 풍경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 시계는 어느덧 오전 6시반을 지나고 있었다. 중환자실로 신경외과 의국장 권흠대씨를 찾아 나섰다. 60평 정도로 보이는 방에는 각종 호흡장비, 영양주사, 심장박동 체크기 등을 주렁주렁 매단 환자들이 고통스러워 하며 잠을 청하고 있다. 대부분 뇌를 수술한 탓인지 삭발한 상태의 환자들 머리에는 실밥이 보인다.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들 사이사이에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보였다. 환자들의 손을 꼬옥 잡은 채 차도를 묻기도 하고 수술이 끝났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환자들에게 큰소리로 이것저것 물어보며 의식회복을 독려하는 의사도 있었다. 권씨의 행방을 묻자 곧 올테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다. 복도 끝에서 잰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짧게 짜른 반 고수머리에 다부진 체격이 군대로 치면 영락없는 훈련조교다.

“오셨습니까. 곧바로 시작하시지요.” 목소리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권씨 옆에는 어느새인가 레지던트 1년차 황교준씨(27)가 와 있었다. 호출을 받고 달려 왔는지 가쁜 숨을 몰아쉰다. 그때가 오전7시. 권씨는 황씨에게 담당 환자 리스트를 인계하며 오전 7시반까지 환자를 둘러보고 오라고 지시했다. 환자가 앓고 있는 질환이 무엇이며 몸 상태는 어떤지 등 환자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파악하라는 것.

“오전에만 호출이 100번 옵니다”

중환자실을 빠져 나온 황씨는 거의 달리다시피 병동을 누비기 시작했다. 도무지 말을 붙일 여유가 없었다. 말을 붙일 여유라니! 어찌나 빠른 걸음으로 다니는지 따라 붙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그렇게 30분을 다닌 황씨는 약속시간인 오전7시반 중환자실로 달려갔다.

중환자실에는 신경외과 기능질환(functional)팀 4명이 모여 환자상황을 체크하고 하루 일정을 논의하는 간이회의가 열렸다. 4년차 치프 권흠대씨 주재로 레지던트 3년차 심규원씨, 2년차 신동아씨(28) 그리고 1년차인 황교준씨가 모였다.

30여분간 환자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 이들은 환자들의 CT촬영 필름과 MRI판독사진, 그리고 기록차트 등을 들고 판독실로 갔다. 각 환자의 주치의인 교수들에게 브리핑을 하기 위해서다. 물론 각종 차트와 필름을 운반하는 일은 1년차 황씨 몫. 오전8시10분경 판독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신경외과 정상섭, 박용구 교수 등이 방에 들어왔다. 수술준비를 위해 수술실에 간 권씨 대신 심규원씨와 황교준씨가 브리핑을 맡았다.

교수의 회진수행이 끝나면 담당 환자들에 대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 4명이 한 팀을 이루지만 수술에 전념하는 4년차 치프나, 환자회진 수술참여 등으로 바쁜 2,3 년차들은 처방전을 쓰지 않기 때문에 모든 처방전을 1년차 레지던트가 쓴다. 담당환자가 50여명이니 처방전 쓰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암센터 5층에는 인턴실이 있다. 103명의 인턴이 1년 동안 수련의 생활을 하면서 사용하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컴퓨터, TV, 냉장고, 전자레인지 소파 등이 마련돼 있어 피로에 지친 인턴들이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다. 수술복 차림으로 오전 TV방송을 보는 사람, 신문을 뒤적이는 사람,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사람, 허공으로 담배를 뿜어대는 사람, 소파에 몸을 기대고 쉬는 사람 등 제각각이다.

오전 중에 황씨가 해야 할 일 중 중요한 것이 CT촬영. 환자가 많은 세브란스 병원에서 제시간에 CT촬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황씨의 설명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푸시(push)’란 관행. 15개의 CT 촬영방을 일일이 다니며 우리 환자를 먼저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푸시’다. 이 환자는 언제까지 촬영을 마치지 않으면 큰 지장이 생긴다는 은근한 압력도 잊지 않는다.

한때 전국민이 하나씩 가지고 있던 호출기. 이제는 휴대폰에 밀려 호출기를 가진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분초를 다투는 기사를 송고하는 기자들도 호출기를 애용했지만 이제는 허리에 호출기를 단 기자는 드물다. 하지만 인턴이나 레지던트에게 호출기는 생명줄과도 같다. 목이나 허리, 아니면 가운 주머니 등 호출음이 가장 잘 들리는 위치에 호출기를 착용하고 늘 신경을 곤두세운다.

병원 이곳저곳을 다니는 황씨의 호출기는 약간 과장하면 거의 1분 단위로 한번씩 울렸다. 환자를 돌보고 처방전을 내리고, CT촬영을 부탁하는 중간중간 호출기가 울려댈 때마다 황씨는 그다지 유쾌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후를 지나고 100여통의 호출을 받은 황씨의 입에서는 결국 “에이 ××, 정말 돌아버리겠네”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중에 알고보니 신경외과 기능질환 파트의 모든 호출은 일단 1년차 레지던트에게 몰린다. 1년차 레지던트는 호출을 받은 뒤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일이면 자신이 처리하고 그렇지 않고 중한 일이면 고참 레지던트에게 도움을 청한다. 물론 일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다.

‘삐비비비’. 오전11시 40분경 또 호출기가 울렸다. 5층 복도를 걷던 황교준씨는 급히 간호사실에 있는 전화로 뛰어간다. “황교준입니다…알았습니다. 곧 내려가겠습니다.” 황씨가 급히 복도 끝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뛰어간다. 황씨가 누른 곳은 지하1층. 응급실이 있는 곳이다. 밀려든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룬 응급실 통로 휠체어에 초췌한 환자가 앉아 있고 주변에는 걱정스러운 눈빛의 가족들이 서성이고 있다.

찜질방에 근무한다는 이 환자는 전날 야근을 마친 뒤 퇴근하려고 옷을 갈아입으려다 신체 일부분에 마비가 온 70대 남자. CT필름을 살펴보니 뇌출혈이다. 황씨가 “평소 이런 증상이 온 적이 있느냐, 구토는 있었느냐, 다른 질환은 없느냐” 는 등의 질문을 하자 가족들은 “다른 선생님들이 와서 벌써 몇 번째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며 짜증섞인 반응이다.

뇌출혈 환자인데 빨리 입원실을 알아봐달라고 요구한다. 황씨는 “뇌출혈로 들어온 환자인데 신경과에서 환자를 보느라 시간을 보냈다”며 빠른 처리를 약속했다(이 환자는 병실이 확보되지 않아 결국 오후3시경 일산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됐다).

어느덧 시간은 낮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뇌출혈 환자의 차트와 CT필름은 든 황씨는 신경외과 응급실에 있는 의사당직실로 가 레지던트 3년차에게 환자의 상황을 자세히 보고했다. “담배나 한 대 피죠.” 5시간 만에 기자에게 던진 황씨의 첫마디다. 흡연실에서 황씨는 “영동세브란스 병원에서 4개월간 근무하다가 오늘이 신촌 세브란스 첫 출근이에요. 아직 환자 파악도 안되고 정신이 없어요” 라며 씨익 웃어보인다. “점심은 안 먹느냐”는 질문에 “이래가지고 밥 먹겠습니까”라며 담뱃불을 급하게 끄고 일어선다.

수술이 끝난 환자를 회복실에서 데려와 CT를 찍은 뒤 중환자실로 데려오고 환자들에게 처방내리고, 병동 5층, 7층, 8층을 회진하던 황씨는 오후3시경 의대본관에 위치한 시청각 사진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황씨를 기다리는 사람은 사지가 떨리고 수족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신경계의 난치병인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40대 남자 환자. 팔운동, 걷기, 글씨쓰기, 환자복 단추를 풀고 채우기 등을 모두 비디오 테이프에 기록했다.

오후4시까지 황씨가 한 일은 대부분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잡무에 가까웠다. 신경외과는 워낙 전문분야여서 인턴은 물론 레지던트 1년차도 수술방에 들어가지 못한다. 인턴실에서 마주친 한 레지던트가 황씨에게 농담을 던진다. “우리 살기 너무 힘들지 않냐?” 황씨는 그저 웃을 뿐. 벌써 회진 돌 시간이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오후 6시. 응급실에 두 명의 신경외과 환자가 대기중이라는 연락이다. 응급환자를 보는 것도 오늘 응급실 당직인 황씨 몫. 차트와 CT촬영 결과를 보니 6세의 남자아이는 뇌수종, 다른 60대 여자환자는 뇌경색 환자였다. 자기 환자는 아니지만 심전도 검사 등 간단한 검사 등을 마쳤다.

한숨 돌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호출기가 울렸다. 오후에 수술을 받은 환자가 회복실에 누워 있다가 CT를 찍지 않은 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는 것. 뇌 부위에 큰 수술을 받은 뒤에는 예상치 못한 출혈 등 부작용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CT를 찍어둬야 한다는 것이 황씨의 설명. 부랴부랴 환자를 중환자실에서 끌어내 CT실에 보내 촬영를 하고서야 담배를 한 모금 빨 기회가 생긴다.

성격좋은 의사=능력없는 의사?

“집에는 가시나요?” 기자의 질문에 “일주일에 한번 정도 일주일치 옷 가지러 잠깐 들러요”라고 답한다. 아침은 물론 점심까지 걸러 거의 탈진상태에 빠진 기자는 “저녁까지 거르실 작정인가요?”라며 절박한 심정으로 물었다. 황씨는 “점심은 의국에서 가끔 시켜먹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먹지 않는다”며 “저녁은 거의 먹는 편”이라고 말했다. ‘휴우’하고 한숨이 나왔다.

밤 8시40분경 CT촬영실에 신경외과 기능질환팀이 모였다. 권흠대씨가 수술을 다 마치고 자신이 수술을 한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CT방에 들렀기 때문이다. 12시간 이상 황교준씨와 생활을 한 소감을 말하면서 “많이 힘들어 하더라”고 말하자 권씨는 “오늘이 가장 ‘스테이블’한 날인데 무슨 소리냐”고 말했다. 황씨가 첫날이라 적응이 안돼서 힘들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

옆에 있던 3년차 심규원씨도 한마디 거든다. 신경외과는 항상 동시에 3,4가지 일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경이 곤두 설 수밖에 없다는 것. 신경외과 의사가 주위 사람들에게서 “성격좋네요” “차분하시네요” 란 소리를 들으면 그것은 신경외과 의사 자질이 부족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

CT실에서 망중한(忙中閑)을 즐긴 레지던트 4명은 밤 9시부터 또다시 회진을 시작했다. 수술받은 환자들에게 수술 후 주의사항을 환기시키고 간호사들에게는 올바른 간호요령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병동을 회진하던 중 권씨는 폐암말기 환자의 가족을 만났다. 폐에서 시작한 암이 머리까지 번진 4기 암환자로 수술을 할 경우에도 소생하리라는 보장은 없는 중환자였다.

7월11일 감마나이프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간에는 이견이 있었다. 이미 시한부 인생인데 1000만원대에 달하는 수술비를 들여가며 수술을 받아 뭐하느냐고 주장하는 쪽과 아무리 많은 비용이 들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족 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탓. 권씨는 “가족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저희는 수술을 강요하지 않는다”라며 “가족들이 합의한 뒤 결정사항을 알려달라”고 말했다.

밤 9시45분경 회진이 끝나고 신경외과 의국으로 돌아오자 책상에는 음식이 배달돼 있었다. 두어시간 전에 배달됐는지 김치찌개는 이미 식어있고 국수도 퉁퉁 불어있다. 음식을 앞에 두고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났지만 권흠대씨는 마무리 회의를 진행했다. 오늘 수술을 받거나 입원한 환자 50여명에 대한 종합정리시간이었다. 아울러 내일 할 일에 대해 팀원들에게 임무를 부여하는 자리였다. 오늘 신촌 세브란스로 첫 출근한 황교준씨에 대한 질책과 격려도 이어졌다. 오늘은 첫날이라 여러 가지 미숙한 일이 있어도 참았으니 내일부터는 실수 없도록 하라는 권씨의 추상같은 호령이 있었다.

식사를 하는 중간 중간 권씨를 비롯한 레지던트들은 최근 문제가 됐던 의약분업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3년차 심규원씨는 불쑥 “우리가 한 달에 월급을 얼마정도 받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200만원쯤 받지 않느냐고 대답하자 의국 한귀퉁이에 쌓인 서류더미에서 채 개봉하지도 않은 월급명세서를 내민다. 레지던트 4년차의 6월 급여를 보니 본봉이 68만원대였다. 이달은 50%의 보너스가 있는 달이어서 이런저런 수당과 교통비 등을 합쳐 실수령액이 150여만원이었다. 매달 같은 월급을 받는다고 가정해 연봉을 계산해 보니 약 1800만원 정도였다.

“히포크라테스 정신? 자부심도 돈도 떠났는데…”

 
눈꺼풀과의 사투
권흠대씨는 “우리가 받는 돈이 무작정 적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며 “같이 생활해 봐서 알겠지만 전공의나 수련의 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그런데도 보건복지부 관리들은 의약분업을 둘러싼 의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월급 몇푼 올려주면 조용해질 것이라는 둥 상황인식을 잘못 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자신들이 무조건 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국가가 시행해온 의료정책의 부조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의료인들이 정부의 시책에 맞서 항거하지 못하고 밀월관계를 유지해 오다가 뒤늦게 병원을 집단적으로 폐업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것. 하지만 젊은 전공의나 수련의들이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게 된 것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레지던트 2년차인 신동아씨도 “이번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의약분업을 실시하되 제대로 된 의약분업을 하라는 요구일 것”이라며 “의과대학을 포함해 15년에 가까운 세월을 수련의 기간으로 삼는 의사들이 해야 할 진료행위를 학부에서 4년간 공부한 약사에게 분담시킨다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사이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1년차 레지던트 황교준씨의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주치의 브리핑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 필름을 판독하고 차트를 분석해 환자의 특성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뇌를 비롯한 신경계통에 큰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순간적으로 위급한 상황에 빠질수도 있기 때문에 병실에 있는 환자들을 돌보는 일도 게을리 할 수 없다. 성공리에 수술을 마친 환자라도 환부에 염증이 생기지는 않는지를 세심히 살피고 하루에도 3,4차례 소독을 해줘야 한다.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보면 어느새 먼동이 터오는 날이 부지기수다.

밤을 새는 것은 1년차 레지던트 뿐만이 아니다. 신경외과 중환자실 한구석에서 열심히 차트를 정리하는 김대야씨는 인턴이다. 김씨는 7월8일 연세대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전공의 비상총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자리에는 바쁜 와중에도 대다수의 전공의가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투표결과도 90% 이상이 현재의 의약분업안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재파업에 돌입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시계가 새벽 1시를 넘어가도 인턴과 레지던트들은 활동을 멈출 줄 모른다. 병동에는 심전도를 체크하고 환자의 환부를 드레싱 하는 전공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응급실에는 수시로 밀려오는 응급 환자들을 돌보는 손길이 멈출 줄 몰랐다.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것이 눈꺼풀의 무게라고 했던가.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에게 처방전을 쓰던 레지던트 1년차 조준형씨가 연이은 야근의 피로를 이기지 못해 고개를 자주 떨군다. 옆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간호사가 “저래가지고는 오늘 밤 안에 일 안 끝나지. 처방전 ‘오더’는 내려야겠으니 불안하고, 그렇지만 피곤하고 졸립기는 하지. 괴롭겠어 정말”이라며 놀려댄다.

“후회할 시간조차 없어요”

후배 전공의들만 밤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레지던트 4년차 치프들이 숙소로 사용하는 의국에서도 밤을 밝히는 사람이 있었다. 신경외과 소아과 척추파트 레지던트 치프 신준재씨(30). 근무시간에 짬을 내기 어려우니 일과가 끝난 뒤부터 학위논문을 쓰느라 졸린 눈을 비빈다.

자신도 인턴 때는 착한 의사였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신씨는 시간이 지나 4년차 레지던트가 된 지금에 와서는 슬프게도 더 이상 착한 의사가 아니라고 말했다. 인턴 때 같으면 지치고 병든 환자들이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여도 어지간하면 참고 웃으려던 자신이었지만 이제는 환자가 조금이라도 성질을 건드릴라 치면 먼저 발끈하고 성을 내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 하지만 이런 일이 모두 5년 넘게 전공의 생활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체득한 습성 아니겠느냐며 씁쓸해 했다.

신씨는 의사가 된 것을 후회한 적도 있다. 영동세브란스 근무 시절에 한 입원환자가 사망한 일이 있었다. 병원이나 의사의 과실이 아니었고 생명을 연장시킬 수 없었는데도 유족들이 병원으로 몰려와 난동을 부리는 장면을 목격한 것. 흥분한 유가족들은 의사나 간호사 등 보이는 사람마다 멱살을 잡으며 상소리를 해댔고 심지어는 따귀를 때리기까지 했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한 것을 처음으로 후회한 때였다.

여러 전공의 수련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어느새 동이 텄다. 새벽6시 병원은 벌써부터 활력이 넘친다. 황교준씨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밤새 환자기록을 정리하고 브리핑에 대비한 탓이지 수척해 보인다. 잠을 못자서 그런지 눈도 충혈된 것 같다.

6시반 권흠대 치프가 와 환자들 차트와 CT필름을 보면서 설명을 해보라 한다. 나름대로 설명하는 황씨지만 권씨는 이맛살을 찌푸린다. 급기야 설명을 중단시키고 이것저것 물으니 황씨의 목소리는 더 작아지고 있었다. 권씨의 입에서는 불호령이 떨어지고 기본기를 제대로 갖추라는 ‘설교’가 10여분간 이어졌다.

잠시 담배를 피러 나온 황씨는 “세게 훈련시킨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생각보다 더 강도가 심하다”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는다. 의사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도 “후회할 시간조차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담배 몇 모금을 급히 빨아들인 황씨는 또다시 잰걸음으로 병동을 향했다.
사용자 아바타
cist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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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목) 12 31, 2009 4:1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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